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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상

바람을 가르다 (부제: 내가 사랑하는 것)

TRABITE 2023. 4. 26.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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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생활하는 고등학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날씨 좋으니 한강공원에서 치킨 먹자!" 

 

여의나루 역에서부터 한강공원은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나는 공원 잔디에 앉아 주변을 돌아봤다. 버스킹 존에 옹기종기 모여 공연을 보는 연인들. 크루저 보드를 타는 사람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공원에 모여 있었다. 그중 7살쯤으로 보이는 꼬마 아이가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헬멧과 무릎보호대를 착용한 아이는 네발자전거에 올라타서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었다. 바큇살에 끼워진 구슬이 짤랑짤랑 소리를 냈다. 자전거는 바람을 가르며 앞으로 힘차게 나아갔고, 내 기억 속 한 부분을 건드렸다. 

 

6살 때였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누비는 형, 누나들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집에 들어올 때면 나는 자전거가 없다며 울상을 지었다. 부모님은 깜짝 생일선물로 자전거를 사주셨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유치원이 끝나면 자전거를 끌고 놀이터로 나갔다. 잘 달리다 중심을 잡지 못해, 다치는 날이 많았다. 상처 난 팔과 다리를 본 엄마는 화를 내셨고, 나는 엄마가 자전거를 타지 못하게 할까 봐 무서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재미있게 놀라고 사주신 자전거에 맨날 어딘가 다쳐서 들어오는 게 마음 아프셨을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 후, 학년이 올라가면서 얼마 되지 않는 세뱃돈을 차곡차곡 모았다. 삼천리를 달려보겠다는 의지로 새로운 자전거를 장만했다. 이제 제법 자전거를 잘 탔다. 휴일엔 집 근처 공원이나 경기장에 갔고, 가족들과 같이 타러 가는 날은 항상 시끌벅적했다. 천천히 좀 가라는 동생과 빨리 따라오라는 누나,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는 나,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시는 부모님. 맨날 싸우고 티격태격하는 우리 3남매가 지겹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도 자전거를 타는 날이면 우리 가족은 하나가 되어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나는 특히 집 앞인 여수 앞바다를 따라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반짝이는 바람을 볼 때면 내 마음도 파래지고 상쾌해졌다. 페달을 밟고 올라서서 주변을 둘러보면 평소 무심코 지나쳤던 아름다운 풍경들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잠시 자전거를 잊고 살았다. 학교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학원공부까지 병행해야 했다. 여수를 떠나 나주에서 기숙학교를 다니느라 더더욱 자전거 탈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그러던 와중,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에 친구와 자전거를 빌려 나주 승촌보를 찾아갔다. 영산강 물줄기를 따라 시원스럽게 닦여 있는 자전거길, 양옆에 펼쳐진 부들과 갈대 풀들, 그 넓은 들판에서 바람을 가르며 페달을 밟고 있는 나와 친구. 그 순간이 너무 행복했다. 몇 년 만에 타보는 자전거였다. 핸드폰 스피커 밖으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와 함께, 내 가슴은 계속 뛰었다. 

 

누군가를 떠올리면 괜스레 웃음이 나오는 것처럼, 자전거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면 기분이 좋아진다. 자전거를 타고 얼굴과 바람이 맞닿으며, 그 바람을 가르는 순간은 짜릿하다. 그 순간을 함께했던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은 내게 행복이다. 누구에게나 영원히 간직하고 싶거나, 아직 기억 속 싶은 곳에 묻혀있는 순간과 사랑이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 자전거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연결고리이다. 나는 자전거로 또 다른 사랑을 하고 싶다. 한강을 끼고 붉은 노을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싶다. 함께 바람을 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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